[KCGI vs 한진家]'G행동주의 펀드'란?…예측해본 향후 성공 시나리오⑦'우호여론' 펀드 본질 가려…'요구안' 관철, 주총 표대결 '진검승부'
고설봉 기자공개 2019-01-31 08:21:42
[편집자주]
별다른 대응 전략을 내놓지 않고 '정중동'하는 듯 보이는 한진그룹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이어 터진 갑질 사태, 국민적 공분, 주요 권력기관의 잇따른 수사, 그리고 "너희들 문제가 많아 행동에 나서겠다"라고 말하는 듯 지분을 매집하고 달려든 한 펀드. 동시에 불붙은 '한국형 주주행동주의' 흐름과 국민연금의 주주관여 움직임. 한진그룹 수뇌부는 비상상황에 있다. 강성부 펀드라고해서 느긋하진 않다. 경제적 이슈를 넘어 정치적 관심사가 됐고 국민적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 분쟁이 어디로 가고 있고 분쟁 당사자들의 전략은 무엇인지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1월 28일 07: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강성부 펀드는 성공할 수 있을까. 강성부 대표가 표방하고 있는 KCGI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 펀드를 일종의 'G행동주의 펀드(Governance Activist hedge fund)'로 정의할 수 있다. KCGI는 일종의 사회책임투자(SRI)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사회책임투자는 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반영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최근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등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관심을 둔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판단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다. 기업의 ESG 성과를 활용한 투자 방식은 투자자들의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편, 기업 행동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ESG에 근거를 둔 KCGI는 기존 행동주의 펀드와 일정 거리를 둔다.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 지분을 매입한 뒤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헤지펀드를 일컫는다. 펀드의 태생적 성격 때문에 기존 지배주주 및 경영권자들과의 소송이나 주총 표 대결도 마다하지 않는다.
행동주의 펀드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이 주주가치를 높인다는 찬성론이 있지만 단기 차익을 위해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반대 목소리도 많다. 이 때문에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기도 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마음에 안 드는 기업 경영진을 갈아치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헤지펀드 요구로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CEO를 포함해 포드자동차, US스틸, CSX, AIG, 야후, 에이본 등 10여개의 글로벌기업 CEO가 교체됐다. P&G, 네슬레, BHP빌리턴 등 글로벌기업 여러 곳이 헤지펀드와 전쟁 중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G행동주의 펀드의 성공사례가 실패사례 보다 많다. 결과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G행동주의 펀드는 급진적 경영진 변화를 요구하지는 않곤 한다. 강성부 펀드 내에 급진적 요구를 할 인물도 없다"고 밝혔다.
◇KCGI의 선공, 여론을 우군으로 만들다
KCGI는 한진그룹을 상대로 분쟁을 일으키는 초기부터 우호 여론을 형성하는 데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기존 행동주의 펀드와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며 분쟁의 상대방이 즉각 반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및 한진그룹 경영진들은 KCGI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초기 요구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공개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여론이 조 회장으로부터 등을 돌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기선을 제압한 KCGI는 우호적인 여론 환경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조 회장 일가 및 한진그룹에 대한 요구를 공론화했다. 비공개로 한진그룹 경영진에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보도자료 형태로 언론에 공개했다. 이어 웹사이트를 개설해 본격적으로 세 몰이에 나섰다. 지속적인 여론전을 펼치는 창구로 활용하는 동시에 한진칼과 ㈜한진 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으는 창구로 사용하기 위한 전략이다.
KCGI는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공개 제안하며 조 회장 일가 및 한진그룹 경영진을 압박했다. 요구는 크게 3가지다. '지배구조 개선 및 책임경영체제 확립방안', '기업가치 제고방안', '고객 만족도 개선 및 사회적 신뢰 제고방안'의 마련이다. KCGI가 '요구'하고, 한진그룹 경영진이 이를 '수용'해야 하는 형식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KCGI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첫 관문은 바로 이 '요구'의 관철 여부에 있다. 우선 KCGI는 '지배구조 개선 및 책임경영체제 확립방안'의 일환으로 지배구조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총 6인의 구성원 중 KCGI가 추천한 인사가 2명을 차지한다. 나머지 구성원은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2명이다. 사외이사도 주총을 통해 KCGI가 선임할 수 있다고 본다면, 지배구조위원회의 과반이 KCGI 측 사람으로 채워질 수 있다. 이어 KCGI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임원추천위원회 등을 도입하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KCGI의 두번째, 세번째 요구는 첫번째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도가 크게 바뀐다. KCGI가 요구한 '기업가치 제고방안'의 핵심은 한진그룹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자산'의 매각이다. 이를 통해 그룹 주력 사업인 항공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대한항공 신용등급을 'A-'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마지막 요구인 '고객 만족도 개선 및 사회적 신뢰 제고방안'은 한진그룹 구성원에 대한 신뢰 회복과 기업 이미지 쇄신에 방점이 찍혀 있다.
KCGI는 공개 제안에 대해 "한진칼과 한진의 대주주와 경영진들이 전향적인 자세로 응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며 이들의 태도변화가 없을 경우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행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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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와 수용, '주총 표대결'로 진검승부
KCGI의 요구안의 전제는 역시 '주주 권한의 적극적 행사'다. 한진그룹에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주주총회 표대결' 밖에 없다.
그러나 KCGI가 요구하는 여러 개선안 대해 한진그룹 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대응을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만간 한진그룹의 공식 입장을 정리한 자료가 발표될 예정이다. 한진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 한 관계자는 "한진그룹 내에서 KCGI의 서면 요구 및 공개가 이뤄진 뒤부터 본격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각 사안들에 대한 반박 등의 형태의 입장 발표가 곧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KCGI의 '요구'와 조 회장 일가 및 한진그룹 경영진의 '수용' 사이에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경우 KCGI가 '성공'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가장 손 쉬운 방법은 KCGI의 뜻에 동조하는 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얻거나, 혹은 연대해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올해 3월 예정된 정기 주주주총회가 KCGI의 성공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진칼 이사회의 교체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한진칼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각각 3명과 감사 1명까지 총 7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4명이 올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석태수 대표이사, 조현덕·김종준 사외이사, 윤종호 상근감사는 2016년 3월 선임됐다. 3년의 임기를 채운 만큼 올해 주총을 맞아 재심임 여부를 물을 수 있다.
그동안 한진칼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한진칼은 자산총액 2조원 기준에 미달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를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사외이사의 선임 과정에서 독립성을 담보하는 기구가 없어 내부 인사에 대한 견제가 미흡하다는 논란이 제기돼 왔다.
이런 점에서 KCGI가 이들 4명의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재선임을 반대하고 나설 경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 이사회 전원 교체 및 대표이사 해임 등은 다소 부담스러운 요구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임기 만료된 이사회 구성원을 재신임 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을 대안으로 내세우면 주주들의 동의를 얻는데 한결 수월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 경우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만큼 향후 KCGI가 요구한 여러 개선안은 적극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KCGI가 주총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조 회장 일가가 보유한 한진칼 우호지분은 28.95%이다. 반면 KCGI의 지분은 10.71%이다. 변수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를 보유한 3대 주주다. 최근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예고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논의했다. 다만 아직까지 '강성부 펀드'의 손을 들어줄지, 말지에 대한 국민연금의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KCGI의 손을 들어줄 경우 판도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KCGI와 국민연금의 지분율을 합하면 18.05%로 불어난다. 그러나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기관투자자들을 우호지분으로 끌어 들일 촉매가 될 가능성이 높다. 4대주주인 크레디트 스위스그룹 아게(3.92%)와 5% 미만 기관투자자들의 지분도 끌어올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48개 증권사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율은 5.77%를 기록했다. 종금·금융·금고도 지난해 말 2개사가 2.72%를 보유했다. 이경우 KCGI가 확보할 수 있는 우호지분은 최고 3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기관투자자 연합이 결성될 경우 오는 3월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는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조 회장 일가와KCGI가 각각 배수진을 치고 치열한 표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변수는 개인투자자와 외국인이다. 양쪽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이들의 선택은 투자수익률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쪽이, 어떤 논리로 주가를 부양할 수 있을지를 피력하는 것이 승리의 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KCGI는 '밸류 한진(valuehanjin.com)'이라는 웹사이트에 KCGI의 활동에 동참하기를 희망하는 주주들의 이메일을 받는 코너를 개설했다. 조 회장 일가와의 지분 싸움에서 소액주주의 참여를 끌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반면 조 회장 일가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진칼은 이사회 멤버가 대거 교체되는 오는 3월 주총이 분수령인데, 이 주총에서 KCGI가 1명의 사외이사만 배출해도 성공"이라며 "만약 사외이사 교체 대상자 전원을 물갈이 할 경우 사실상 경영진 교체도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큼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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