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9월 16일 07시5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심조심 걸음을 떼며 단상 앞을 지난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테이블로 향했다. 먼저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목례를 하고 조심스레 의자를 뺐다. 좌우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목례를 하고 살며시 자리에 앉아 명함을 교환했다.어려운 자리여서 더 조심하는 것으로 여기기엔 걸음과 몸짓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수십년 몸에 밴듯 자세와 행동에서 겸손이 묻어났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며 주변을 흐트리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진솔함까지 엿보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도 차분함은 유지됐다. 묵묵히 수저를 들어 밥과 국을 떠넘기며 주변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친숙함이 느껴졌다. 때로 몇 마디 말을 했지만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기자들의 날선 질문에 당혹해하고 어떤 대목에선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놓았다.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부분에선 소신을 드러내며 강한 어조를 보이기도 했다.
취임 석달을 넘긴 이 원장이 지난 15일 첫 기자 간담회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영화에서 보던 날서고 권위적인 검사의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차분하고 예의바른 동네 형에 가까워 보였다.
이 원장은 대체로 금융사와 시장에 유화적인 목소리를 냈다. 과거 금감원이 잘못한 부분을 개선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정착하겠다고 했다. 또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 우리 금융사들의 리스크를 같이 고민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힘들어 하는 서민들을 위해 최적의 지원방안을 도출하겠다고 했다. 코로나19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원금·이자 유예제도의 출구전략을 조심스레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취약차주를 보호하고 금융사의 리스크도 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차원이다.
이 원장은 “감독원장을 맡은 뒤 긴박한 현안에 대응하고 업권의 다양한 의견을 듣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며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업권과 관계기관 모두 협력하는 것인데, 당국 주도로 감독방향을 결정하기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최근 몇 년 시장과 전투를 벌이며 오히려 힘이 약해졌다. 강도 높은 검사와 제재를 하는 동안 잠시 힘이 세진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주장과 감정이 뒤섞인 일방통행 행보에 시장은 반기를 들었다. 법원도 금감원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럴수록 금감원과 금융사, 시장의 괴리와 갈등은 더욱 커졌고 혼란은 가중됐다.
이제 다시 금감원과 시장이 화합해야 할 때다. 다가오는 거대한 리스크 앞에 맞설 수 있는 공동의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 석달 동안 이 원장은 검사에서 금융감독원장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것 처럼 보인다. 자기를 낮추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진정한 권위와 힘도 여기서 나온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금감원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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