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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30년 신영맨 허남권, 가치투자 1세대 '대명사' 보수적 그룹 기조 속 운용사 외형 확대 한계 지적도

이돈섭 기자공개 2024-03-06 17:50:22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6일 17: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의 사의 표명으로 국내 1세대 가치투자 펀드매니저 시대가 저물고있다. 허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신영금융그룹에서만 일해온 정통 '신영맨'이다. 신영자산운용으로 적을 옮긴 뒤에는 마라톤, 고배당 등과 펀드를 론칭해 시장에 이름을 알리면서 2017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가치투자 펀드매니저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1963년생인 허 대표는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신영증권에 입사했다. 신영증권에서 애널리스트 등으로 일한 그는 신영운용 설립 태스크포스(TF)에 참여, 1996년 신영운용 출범과 함께 적을 옮겼다. 2007년부터는 최고투자책임자(CIO)로 활동하며 전무이사와 부사장 등을 거쳐 2017년 이상진 전 대표에 이어 대표로 선임됐다.

허 대표가 CIO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신영운용은 '마라톤' 시리즈와 '밸류고배당' 등 가치주 투자 스타일 펀드 라인업을 내세워 가치주 붐을 일으켰다. 당시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현 라이프자산운용 의장)과 강방천 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등과 함께 국내 1세대 가치투자 펀드매니저로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허 대표가 지금도 책임운용역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신영마라톤증권자투자신탁'의 경우 시장 수익률 대비 월등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2002년 설정돼 올해로 22년째 운용되고 있는 이 펀드의 현재 운용규모는 4960억원. 6일 현재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로 656.9%를 기록, 비교지수 224.0%를 3배 가까이 웃돌고 있다.

신영마라톤 펀드와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신영밸류고배당 펀드는 대표적 메가펀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2003년 설정한 이 펀드는 성과 호조로 2014년 운용규모를 3조원대로 끌어올린 바 있다. 현재는 1조1963억원 규모로 운용되고 있으며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로 851.2%를 기록, 벤치마크(269.4%) 대비 뛰어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대표 취임 후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성장주가 주도하는 시장이 펼쳐지면서 수탁고가 꾸준히 빠졌기 때문이다. 허 대표가 취임한 2017년 말 AUM은 16조원대였지만 지난해까지 매년 많게는 40% 이상, 적게는 6%씩 감소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3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하반기 국민연금 등의 대규모 일임자금이 이탈하기도 했다.

실적은 시황에 따라 출렁였다. 신영운용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폭락한 증시가 꾸준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면서 2020사업연도 순이익으로 341억원을 기록,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순이익은 91억원으로 감소했다.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자산운용사로 재단장한 후 최근 13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듬해 신영운용 순이익은 70억원을 기록, 턴어라운드에 실패했다. 허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 영국의 자산운용사 '베일리기포드'와 손을 잡고 글로벌 그로스 펀드를 선보이는 등 돌파구 마련에 힘썼지만, 해당 펀드 시리즈는 모두 50억원 안팎 수준의 운용규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성과가 부진했던 배경에는 기존고객 관리를 중시하는 그룹의 보수적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0년대 초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테마 이후 가치주 장세가 펼쳐지면서 신영증권 채널을 통해 상품을 시장에 공급하면서 하우스를 적극적으로 알려왔지만, 장 분위기 전환 이후 신규고객 유치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허 대표의 과거 상품 출시 기조도 기존고객 친화적 행보가 많았다. 허 대표는 '신영밸류고배당' 성과가 부진하자 2020년 성과보수를 도입한 자펀드를 만들어 장기투자 고객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운용보수를 0.39%에서 0.15%로 낮추는 대신 5% 초과수익에 대해 10%의 성과보수를 매겨 수익자 선택지를 넓히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새 국내 운용업계가 ETF와 퇴직연금 시장을 중심으로 조직과 상품을 재편하자 신영운용 입장에선 돌파구 마련이 시급해졌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허 대표가 그간 원 회장의 전폭적 신임을 얻어 지금까지 두 번의 연임에 성공했지만, 새로운 환경 속다른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란 설명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허 대표는 신영증권과 국내 가치주 펀드매니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 금융투자업계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며 "신영그룹 내 최연장자이기도 하고 지금 시점에서 세대교체를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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