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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사로잡은 예술]'골드스타' 디자인한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의 집구정순 디자인포커스 대표, 50여년 컬렉션으로 경기도 양평 구하우스 설립

서은내 기자공개 2024-07-11 08:07:58

[편집자주]

예술 작품에는 무한한 가치가 녹아있다. 이를 알아본 수많은 자산가, 기업가들의 삶에서도 예술은 따뜻한 벗으로서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더벨은 성공한 CEO들이 미술품 컬렉터로서 어떻게 미술의 가치를 향유하는지, 그의 경영관, 인생관에 예술품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터뷰를 통해 풀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7월 09일 08: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구정순 디자인포커스 대표(72)의 컬렉션은 일반적인 개인 컬렉터들의 컬렉션과는 질적인 차이를 두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결심 아래 모아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40살이 되던 때부터 구 대표는 사회 환원의 의미를 담아 자신의 아트 컬렉션을 공유할 미술관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었다. 그때부터 그 목적에 맞는 컬렉션을 조성해왔다.

그렇게 구정순 대표의 컬렉션은 8년 전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 설립된 구하우스에 모였다. 이곳은 집 처럼 설계된 미술관이다. 구 대표가 강조하는 컬렉션의 특징은 '좋은 작품임에도 시중에서 잘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것이 곧 구하우스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구 대표가 작품을 구매하는 기준 역시 이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 스위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을 방문했던 경험은 그가 구하우스를 설립하는 데에 중요한 동기가 됐다.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는 아트바젤을 창시한 화상이자 전설적인 미술품 수집가다. '예술품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바이엘러의 말은 구 대표의 마음을 크게 울렸다.

그는 "바이엘러 재단에 가보니 바스키아 작품만 수십점, 하나에 100억~200억원 수준의 자코메티 작품만 보더라도 방 한 가득 수준으로 모여있더라"며 "바이엘러는 그런 엄청난 예술 유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이며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 구하우스에서 만난 구정순 디자인포커스 대표.
◇ 역사가 된 CI, 영감이 된 예술

구정순 대표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초기 CI(Corporate Identity)를 만든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30대의 나이로 미국 디자인포커스인터내셔널의 한국지사장을 맡았으며 이후 회사명을 디자인포커스로 바꾸고 국내 최초 CI 디자인 전문회사로서 명성을 이뤘다.

1980년대에는 금성사(LG전자 전신)의 CI 'Gold Star'를, 1990년대에는 삼성의 타원형 CI 심볼 안에 쓰여진 영문자 레터를 구 대표가 디자인했다. 삼성전자 애니콜 로고, KB국민은행, KBS, CGV, 삼양사, 웅진 등 주요 기업 CI는 모두 구 대표의 손길을 거쳤다.

구 대표의 첫 미술품 구매는 스물세살 때였다고 한다. 일찍부터 가져온 예술품에 대한 소장의 열정은 그의 사업에도 수많은 영감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CI업계의 대모로서 그가 거둔 성공의 재원은 또다시 컬렉션의 기반이 됐다.

박수근의 Drawing. <구하우스>

그의 첫 컬렉션은 회사에서 받은 첫 보너스로 산 박수근의 드로잉이었다. 첫 구매였던만큼 한달동안이나 그 그림을 살지 말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 구매 후 한달간은 회사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서 그 그림만 들여다봤다.

구 대표는 "스물셋 한창 때 받은 돈으로 예쁜 옷을 사고도 싶었을텐데 그 때 왜 그림을 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구매한 작품은 일본 여성작가 유코 도야가 만든 사막여우 조각작품이었다.

그는 "키가 아주 작은 일본 여인이 차를 몰고 동경에서 요코하마까지 간 후 배를 타고 저 작품을 싣고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까지 와서 전시를 했다"며 "우연히 그 여우작품을 만났고 내가 사게 됐다"라고 말했다.
유코 도야, Fox. 1988, Rust, Iron, 106x 8 x 100cm

◇ 시중에 보기드문,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

구 대표의 컬렉션에는 스토리가 담겨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란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CI 디자이너로서 스토리텔링이 부족하거나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 소재에 대해선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이 구하우스에도 똑같이 스며들었다.

구 대표는 "단색화 작품들이 너무 유명하지만 구하우스에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또 "소위 잘 나가는 작품은 갤러리에 널려있고 굳이 미술관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좋은 작품이지만 시중에 잘 안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가장 최근에 소장하게 된 작품은 강철규 작가의 'Fishing for Dinner'이다. 굉장히 평화로운 풍경 속 한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다. 구 대표는 "누가봐도 편안하고 아름다워보이는 작품인데, 잘 보면 그 사람의 다리 위에 검은 덩어리가 붙어있다"며 "그건 모든 인간에게 카르마, 즉 업이 있다는 걸 뜻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내게 다 이뤄서 아무 걱정이 없겠다고들 한다"며 "하지만 인간 모두에게는 기본적으로 타고난 카르마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이 말해준다"고 얘기했다.
강철규, Fishing for Dinner, 2023, 227x 162.5cm, Oil on Canvas
◇ "사립미술관 운영, 외부 지원 기대지 않고 재원 마련돼야"

많은 사람들이 구하우스를 찾아 감명을 받게되고, 그들과 예술품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구 대표에게 큰 즐거움이다. 구하우스는 유명한 아트 러버, 가수 RM이 다녀간 곳으로도 잘 알려졌다. 최근에는 그룹 NCT의 런쥔도 이곳을 찾아 구 대표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구 대표는 "구하우스 1층에 전시된 펭 이잉(Feng Yiying)의 작품 '구붕(久鵬)'에 런쥔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며 "런쥔은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고 했는데, 새장 안에 있는 나와 밖에 있는 내가 서로 쳐다보는 작품의 모습이 꼭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해 울컥했다더라"고 말했다.

구하우스 1층, 화장실 구조로 꾸며놓은 방 한 구석. 펭 이잉 작가의 '구붕'이 설치돼있다.

구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서 미술관 조성이 꿈인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렇다면 컬렉션에서 자기만의 기준은 꼭 하나 만들어둬야 할 거라 본다"면서 "단순히 어떤 작품을 사고 그 가격이 오를지를 논하겠다는 것은 본질과 거리가 너무 먼 얘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술관 설립 후 8년이 지나니 사람들이 감동받는 좋은 전시를 보여줘야한다는 목표가 더 강해진다"며 "다만 미술관 사업은 애초부터 이를 통한 수익을 기대해선 안되는 일이며 마이너스를 염두에 두고 외부지원에 기대지 않는, 운영 재원에 대한 대책을 확실히 마련해놓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구하우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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