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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DL그룹, 수송동 시대를 기다리며

정지원 기자공개 2025-01-16 07:37:25

이 기사는 2025년 01월 15일 08: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룹마다 상징성을 갖춘 터가 있다. 삼성은 호암아트홀이 있었던 서소문 사옥을 재개발 중이다. SK는 서린빌딩을 중심으로 종로에 자리 잡았다. LG는 여의도 쌍둥이빌딩, 롯데는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그룹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현대차는 삼성동 GBC에 신사옥을 짓고 계열사를 모으기로 했다.

달리 말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그룹 오너들은 대부분 한 자리를 지키고자 했다. 그룹의 정신이 모이고 성장의 역사를 함께 할 공간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구글 입사의 꿈을 캘리포니아 본사 출근으로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DL그룹은 수송동 대림빌딩에서 사세를 키웠다. 1976년부터 2020년까지 약 44년간 수송동을 지켰다. 이곳에서 국내 최고(最古) 건설사인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을 중심으로 한 국내 최초 건설그룹이 탄생했다. 2021년에는 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흩어져 있던 계열사를 돈의문 디타워로 모았다.

하지만 서대문은 DL그룹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룹의 주축인 DL이앤씨는 올해부터 마곡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DL이앤씨의 자회사인 DL건설은 부천으로 이전을 검토 중이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재건축을 추진 중인 대림빌딩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또 다시 그룹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셈이다.

언뜻 수송동의 레거시를 이어 받는 듯 보이지만 아니다. 대림빌딩을 임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던 종로구청이 사무실을 이전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소위 이 자리를 몇몇 계열사들이 메우러 가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2027년 이후 대림빌딩 재건축이 본격화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더라도 이곳에 다시 그룹이 모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뜻이다.

DL그룹 임직원들도 수년이 지난 뒤에는 또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단언하기도 한다. DL이앤씨의 개발사업지 중 임차인이 채워지지 않는 곳 또는 임대료가 싼 오피스로 가게 될 것이라고.

대림빌딩 재개발 사업의 본격 추진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개발사업 용적률이 상향 조정됐다. 기존의 최대 두 배 이상 연면적의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DL그룹이 다시 모일 공간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언젠간 이 자리에서 그룹이 함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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