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로 메리츠증권]고리대 부담…IB 사업 지속 가능성 '관건'③일회성 딜 기업대출…신뢰 기반 IB 사업과 상충
백승룡 기자공개 2025-03-04 07:25:34
[편집자주]
여의도의 시선이 메리츠증권으로 쏠리고 있다. 그간 부동산금융, 고금리 기업대출 등으로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해 왔던 메리츠증권이 돌연 ‘레드오션’인 정통 IB, 리테일 사업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메리츠증권의 이러한 변화가 성과로 이어질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벨은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있는 메리츠증권을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2월 27일 07시3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메리츠증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고금리 비즈니스는 ‘양날의 검’이다. 딜의 수익성만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지만, 기업과의 중장기적인 관계는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메리츠증권은 기업금융부문을 육성하면서도 기존 고금리 기업대출 비즈니스는 변함없이 발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모순처럼 보이는 비즈니스 구조 속에서 메리츠증권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쩐주'로 존재감 키운 메리츠, 딜 지속성은 의문
코스닥 상장사 대상 전환사채(CB) 비즈니스를 영위하던 메리츠증권이 다시금 이목을 끌게 된 계기는 2023년 초 롯데건설 공동펀드 딜부터였다. 당시 롯데건설의 유동성 우려가 커진 탓에 주요 금융기관들이 거래를 주저하던 상황에서 메리츠증권이 나선 것이었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6000억원을 후순위로 받치고 메리츠증권·메리츠화재·메리츠캐피탈이 9000억원을 선순위로 출자했다. 만기는 1년 2개월로, 메리츠 측의 이자수익만 총 1000억원을 웃돌았다.
메리츠증권 특유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계열과 연계된 자금 집행력이 돋보이면서 존재감이 급격히 커졌다. 이후 롯데컬처웍스, SGC E&C(옛 SGC이테크건설), 홈플러스, 엠캐피탈, 폴라리스쉬핑 등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이 줄줄이 메리츠증권으로 향했다. 지난해에는 KCGI의 한양증권 인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 자본시장의 굵직한 이슈마다 감초처럼 등장해 ‘쩐주’ 역할을 맡기도 했다. 어떠한 이해관계가 없어도 금리와 담보 조건만 맞으면 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메리츠식 비즈니스였다.
다만 이러한 딜은 금리가 워낙 높아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난다는 단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건설은 유동성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메리츠금융과의 공동펀드를 연장하지 않았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3월 만기가 도래하자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산업은행 △KB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 다수 금융기관과 2조3000억원 규모 장기펀드로 갈아탔다. 메리츠와는 추가로 신규 약정을 맺고 5000억원을 차입한 게 전부였다.
메리츠증권이 기업과의 중장기적인 관계보다는 철저하게 딜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조 때문이었다. 증권사 관계자는 “당장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데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메리츠증권으로 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협상력이 떨어지는 만큼 메리츠증권이 요구하는 고금리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재무여건이 어려운 기업들의 자생력을 더욱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차주들이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차주에게 남는 주홍글씨…비금융사 딜 수임 '과제'
문제는 이 같은 비즈니스 방식이 기업과의 네트워크 구축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탓에, 투자은행(IB) 사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건설의 경우, 메리츠증권이 공동펀드를 유지하는 동안 높은 금리 조건 외에도 롯데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관을 메리츠증권으로 바꾸게 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롯데그룹의 DCM·ECM 딜 주관을 맡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기업금융본부를 신설한 이후 NH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 등 두 건의 회사채 발행 주관을 맡았는데, 모두 동종업계 발행사라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본부 조직을 이제 막 세팅하고 있는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올해 들어 1~2월 사이 100여개 기업이 발행시장에 나선 것을 고려하면 연초 성적표로는 아쉬움이 남는 숫자이기도 하다. 지난 2022년 메리츠증권에게 단독 대표주관을 맡겼던 흥국생명도 올해는 KB증권·NH투자증권으로 주관사를 교체했다.
한 증권사 본부장은 “메리츠증권의 비즈니스 방식은 단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는데, 중장기적인 신뢰를 추구하는 IB 비즈니스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성격”이라며 “메리츠증권이 새롭게 IB 조직을 꾸리고 있지만,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메리츠증권의 기존 비즈니스모델 자체가 구조적인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기업금융부문 신설에도 기존의 고금리 기업대출 비즈니스는 변함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취지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기업금융부문을 신설하더라도 기존의 기업대출 등 수익성 높은 딜은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갈 것”이라며 “비즈니스모델을 바꾸는 것이 아닌, 기존의 강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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