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02일 08시1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물갈이'는 어느 정도 본능에 가깝다. 내 조직을 내 사람들로 꾸리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에는 황제가 바뀌면 신하가 바뀐다는 '일조천자일조신(一朝天子一朝臣)'이란 말도 있다. 현대 정치를 봐도 지도자가 바뀌면 첫 단추는 예외없이 인사 교체다. 무조건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다. 조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새 인물을 쓰는 건 경영학적 관점으로 봐도 합리적이다.최근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했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다. 주주총회에서 한화오션으로 사명이 변경됐고 동시에 이사진 교체가 이뤄졌다. 이후 불과 일주일 만에 전체 임원 46명 가운데 35명이 짐을 쌌다.
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한화그룹 출신이 고스란히 채웠다. 한화오션으로 이동한 임원은 22명이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화오션으로의 이동이 결정됐다. 일찌감치 발령을 받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상보다 교체 폭이 컸다.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지우기로 봐도 무방하다. 과거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이나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들을 인수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 속도뿐만 아니라 규모가 상당하다. 우려의 시선이 나오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이번에 떠난 대부분은 회사에 오랜 기간 몸담은 인물들이다. '홍철 없는 홍철팀', '조선(造船)인 없는 조선(造船)사'가 떠오른다.
M&A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많다. 적정한 가격, 업황, 산업 자체의 성장성 등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못지않게 중요한 게 화학적 결합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M&A의 실패 원인으로 문화적 충돌, 의사소통의 실패, 직원들의 사기 저하 등이 지목되고는 한다. 시사하는 건 명백하다. M&A 성공의 마지막 열쇠가 '사람'에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기우일 수도 있다. 이번 인사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굳이 조선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회사를 충분히 잘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의 번영을 가장 기원하는 사람이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은 그간 여러 차례 M&A 성공신화를 써왔다. 베테랑의 선택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적으로 대규모 인적 쇄신은 때로는 실패했고 때로는 성공했다. 새로운 것에만 집착하다 결국 목적을 잃어버린 사례가 부지기수다. 반대로 과거와의 과감한 단절을 선택하면서 기대 이상의 결실을 거둔 사례 역시 수도 없이 많다.
사실 돌이켜보면 결국 사람의 문제였던 것 같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모두 쓰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구관이든 신관이든, 새 부대든 헌 부대든 중요한 건 옛 것인지 새 것인지가 아니다.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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