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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준공의 진화]일시적 시장 위축 불가피, 개발사업 옥석가리기 심화③책준 제도개선시 PF사업 '찬바람', 중장기 투심 회복 전망

이재빈 기자공개 2024-12-11 07:52:47

[편집자주]

책임준공 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관행으로 자리잡은 자금조달 방식이 건설업계에 지나친 부담을 주고 있다는 공감대가 업계는 물론 당국에도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주도로 출범될 책임준공 개선 태스크포스(TF)는 내년 1분기 중으로 책임준공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더벨은 개선안 발표에 앞서 제도개선 논의가 시작된 배경과 건설사·금융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과 요구사항, 채무인수 약정이 사라진 뒤 변화할 부동산 개발사업의 구도 등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10일 14: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책임준공 미이행시 채무인수 관행이 사라지게 되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축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시공사가 짊어졌던 리스크를 앞으로는 금융기관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시장은 한 기관이 특정 상품을 취급하지 않으면 모든 기관이 해당 상품을 취급하지 않는 기조가 강해 일시적인 침체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건설업계는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책준 모델이 시장에 안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고금리가 맞물린 현재 환경이 개선되면 충분히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존에도 제도가 변경될 때 시장위축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해소됐던 점도 건설업계가 제도 안착을 전망하는 근거다. 다만 사업성이 높은 현장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옥석가리기 구도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 급성장 PF시장, 경기침체에 자금조달 '난항'

한때 PF대출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꼽혔다. 대출원리금 손실 가능성은 낮지만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준 미이행시 채무인수 약정을 통해 미분양 리스크 일부를 시공사가 부담했고 준공 후에는 담보대출 전환을 통해 투자금 회수가 가능했다.

금융기관들은 사업성보다 신용보강 구조에 집중했다. 약정을 제공한 건설사의 신용등급만 우량하면 내부 투자심의 통과가 충분히 가능했다. 캐피탈, 저축은행, 증권사 등도 PF대출 시장에 투자하고 있었던 만큼 경쟁적으로 투자처를 물색했다.

이같은 환경 덕분에 국내 부동산 PF 시장은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은행 집계 기준으로 2017년 말 66조원이었던 PF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135조원으로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국내 PF대출 잔액인 77조원의 2배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한 셈이다.

다만 건설부동산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PF 대출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PF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1분기 말 134조2000억원, 2분기 말 132조1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같은 기조가 유지된다면 2012년 이후 12년 만에 PF대출 잔액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잔액이 감소한 건 주로 중소형 시공사의 현장이다.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사가 책준 약정을 제공하고 있는 사업지에서는 대주단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대형 시공사 현장에서는 PF대출 조달이 가능하다. 기관들이 대형 시공사 책준 현장에 한해 제한적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형 시공사들이 채무인수 약정을 제공하지 않게 되면 PF대출 시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기관투자가들은 현재 중소형 시공사의 채무인수 약정을 두고 사실상 신용보강이 없는 것이라고 판단해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대형 시공사 현장일지라도 채무인수 약정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중소형사 현장과 차별점이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대형 시공사 재무부서 관계자는 "기존에도 시공사의 채무인수 약정이 없는 본PF 조달이 일부 있었지만 대주단 확보가 쉽지 않았다"며 "인수약정이 없는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리스크관리 체계를 사실상 공유한다는 점도 PF대출 시장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 투자심의 단계에서 기관들이 검토하는 주요 항목 중 하나는 타기관 투심 승인 여부다. 다른 대형 기관에서 투자를 확정지었다면 투심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투자를 결정한 기관이 없다면 상대적으로 통과가 어려운 경향이 있다.

먼저 '총대'를 멜 기관이 필요한 구조다. 하지만 중소형 건설사의 채무인수 약정이 있는 사업지도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보강이 없는 현장에 기관이 선뜻 총대를 메기는 어렵다. 서로 눈치만 보면서 실제 투자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금융위기 직후 유사한 상황 반복, 신규 플레이어 등장해 분위기 '반전'

이같은 우려 속에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시공사 채무인수 약정이 없는 책준 모델이 시장에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이 제기된다. 당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기관들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기 어렵지만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고 금리가 하락하는 국면에는 고수익 시장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시공사들의 재무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부동산 개발사업의 표준을 시공사 연대보증에서 현재의 책임준공 및 미이행시 채무인수 약정으로 변경했던 시점이다.

금융위기 전인 2008년 77조원이었던 부동산PF 대출잔액은 2012년 말 39조원으로 줄었다. 금융위기로 인한 시장의 침체도 있었지만 연대보증이 빠진 시공사의 책임준공 약정을 기관들이 신뢰하지 못했던 점도 시장 위축을 야기했다.

하지만 바뀐 부동산 개발금융 시장에서 가능성을 본 새로운 플레이어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메리츠종합금융증권, 지금의 메리츠증권이 부동산 PF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다.

메리츠증권은 다른 기관들이 투자를 꺼리는 부동산PF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집행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량한 사업장 위주로 투자를 집행했다. 덕분에 2009년 1월 2.5%였던 기준금리가 2011년 6월 3.25%로 오른 뒤 2016년 1.25%로 떨어지는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우량한 사업장 위주로 투자할 수 있었다.

2009년 214억원이었던 메리츠증권의 별도기준 연간 순이익 규모는 2016년 2530억원으로 11.8배 급증했다. 자기자본 규모도 5295억원에서 1조8861억원으로 확대됐다. 현재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기준으로 자기자본 5조6194억원, 연간순이익 4242억원을 기록하는 초대형 IB로 자리매김했다. 선제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 내 지위와 체급을 키운 셈이다.

메리츠증권이 부동산PF를 통해 급성장함에 따라 다른 기관들도 책임준공 제도가 도입된 개발금융 시장에 합류했다. 금융기관의 리스크가 확대됐지만 고수익 시장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부동산PF 대출잔액은 2016년 80조원을 넘어섰고 2018년에는 80조원을 기록하며 금융위기 직전 수치인 77억원을 상회하게 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처음 책준 제도가 도입될 때에도 투자위축 우려가 있었지만 가능성을 본 기관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었다"며 "새로운 책준 모델이 도입된 후에도 일시적인 위축이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가능성을 본 기관들이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투심이 회복되고 건전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업장에 대한 옥석가리기 구도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공사가 미분양 리스크를 일부 분담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 하에서는 금융기관이 오롯이 모든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공사 신용등급이 아닌 프로젝트의 사업성에 투자원리금 회수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인 만큼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낮은 곳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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