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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준공의 진화]제도개선 논의 '막전막후'①시행·시공 리스크 분리 취지 무색, 채무인수에 건설사 재무건전성 훼손

이재빈 기자공개 2024-12-09 07:49:40

[편집자주]

책임준공 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관행으로 자리잡은 자금조달 방식이 건설업계에 지나친 부담을 주고 있다는 공감대가 업계는 물론 당국에도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주도로 출범될 책임준공 개선 태스크포스(TF)는 내년 1분기 중으로 책임준공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더벨은 개선안 발표에 앞서 제도개선 논의가 시작된 배경과 건설사·금융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과 요구사항, 채무인수 약정이 사라진 뒤 변화할 부동산 개발사업의 구도 등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04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책임준공 제도개선 논의의 도화선은 지난해 말부터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시공사들의 채무인수다. 다수의 사업장에서 책준 미이행으로 인한 시공사의 조건부 채무인수 리스크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준공지연에 시공사의 책임이 크지 않더라도 관행으로 굳어진 계약으로 인해 시공사들은 거액의 채무를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책준은 당초 시공사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외환위기(IMF)를 계기로 도입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대보증 제도가 건설사 우발부채 리스크를 지나치게 확대함에 따라 대안으로 도입됐다. 시대마다 형태가 조금씩은 변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업성 리스크와 시공사 건전성의 절연이 제도의 목적이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채무인수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시공사 귀책사유 없어도 채무인수, 공사기한 연장 사유도 제한적

2024년은 시공사 재무팀에 비상이 걸렸던 한 해다. 책준 미이행에 따른 시공사의 채무인수가 다수 발생하면서 관련 리스크가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투자금 회수가 불확실해진 대주단은 책준기한이 하루라도 도과되면 채무인수 조항을 근거로 시공사에 채무인수를 요구했다.

시작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물류센터 개발사업이다.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가유지구에서 진행되고 있던 물류센터 개발사업에서 시공사 책준 의무가 미이행됨에 따라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12월 995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

문제는 준공 지연에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시행사가 인허가를 제때 받아내지 못하면서 공사가 지연됐음에도 약정에 따라 HDC현대산업개발이 채무를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현재 공매로 나온 사업지를 매입해 자체사업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에도 책준 미이행에 따른 시공사 채무인수가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2월에는 금호건설이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색2지구 오피스텔 개발사업과 관련해 612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 같은달 범영건영도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오피스텔 개발사업에서 책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766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

2분기 들어서는 채무인수 규모가 1000억원을 상회하는 사례도 포착됐다. 먼저 4월에는 GS건설이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산업단지 개발사업과 관련해 책준 미이행 사유로 1312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 시행사가 공사장에서 발생되는 사토(흙) 반출처 수배에 실패해 공사가 지연됐음에도 GS건설이 1000억원이 넘는 채무를 떠안았다.

DL건설은 지난 5월 경기도 이천시 군량리 물류센터 개발사업 시행사가 파산하면서 1220억원의 PF대출 채무를 대위변제했다.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했지만 자금조달 과정에서 시공사의 연대보증이 제공됐기 때문에 채무를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까뮤이앤씨가 지난 10월 책준 미이행으로 인해 1750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 경기도 안성시 성은지구 복합물류센터 개발사업 관련 채무인수다. 다만 까뮤이앤씨는 책임준공 기한을 2025년 1월로 연장하고 준공 후 매각을 통해 PF대출을 상환할 예정이다.

시공사 채무인수 사례는 올해를 기점으로 급증하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2022년 한해 동안 종합건설업 기업들이 채무인수를 공시한 사례는 4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PF대출 조달에 따른 조건부 채무인수와 최종적으로는 취소된 둔촌주공 재건축 관련 채무인수 등 실질적으로 인수가 이뤄진 사례는 전무했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10건 공시됐다. 이 가운데 실제로 채무를 인수한 사례는 7건이다. 신세계건설의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주상복합 개발사업에서 책준 미이행에 따른 521억원 채무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도 안성 물류센터 관련 995억원 규모 PF대출 채무를 인수한 시점도 2023년이다.

2024년 들어서는 11월까지 총 21건의 채무인수결정 공시가 발생했다. 한해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공시 수가 지난해의 2배를 상회하고 있는 셈이다. 예년과 달리 대형 시공사들도 책준미이행에 따른 채무인수 결정공시가 다수 포함돼 있다. 실제 PF대출 채무인수는 총 10건으로 집계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 귀책사유로 책준기한이 도과되는 경우는 손에 꼽지만 천재지변과 전쟁 등 극히 일부의 사례가 아니면 대주단은 공사기한 연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채무인수를 걸지 않으면 PF대출 조달이 어렵기 때문에 시공사들은 어쩔 수 없이 약정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단체행동에 당국 화답…제도개선 TF, 책준 표준약정 마련

시공사 귀책이 없는 책준기한 도과가 실제 채무인수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건설업계는 제도 변화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동산개발의 사업성과 시공사 건전성을 분리하기 위해 도입된 책준이 경기 침체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책준 미이행시 조건부 채무인수 관행이 건설업계에 자리잡은 시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IMF를 계기로 도입된 연대보증 제도가 시공사의 손실흡수능력을 웃도는 부담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IMF 이전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시공사의 자체자금이나 외부 자금조달로 진행됐다. 시공사가 조달한 자금이나 자체자금을 시행사에 대여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기업의 부채비율 관리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부동산 PF 제도가 도입됐다. 시행사의 대출채권에 시공사가 연대보증 형태로 신용을 보강하는 방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작된 지난 침체기에는 시공사 연대보증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금융기관들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한 시공사들이 다수의 사업장에 제공하고 있는 연대보증이 경기침체 상황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또 단순도급 위주로 공사를 수주하는 시공사가 사업성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당국과 업계가 내놓은 해답이 현재의 책임준공 및 미이행시 채무인수 약정이다. 시공사는 미준공 리스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준공 후 미분양이나 미매각 등 사업성과 관련된 리스크는 사업주체인 시행사와 투자자인 대주단이 지도록 고안됐다. 시행과 시공 리스크의 분리가 제도의 도입 목적이었던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제도 도입의 목적과 달리 시행과 시공의 리스크가 분리되지 않아 건설사가 채무를 인수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업계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2분기를 기점으로 주요 시공사 재무조직이 주기적으로 모여 당국에 요청할 제도 개선내용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당국도 건설업계가 제시한 책준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시공사뿐만 아니라 신탁사 책준 역시 약정 기관의 대응능력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형성돼 있어 관련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당국과 건설업계는 하반기를 기점으로 수차례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했다.

다만 금융기관 건전성 문제가 당국의 고민으로 작용했다.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책준 기한 연장 사유를 확대하고 조건부 채무인수 조항을 삭제하게 되면 관련 리스크가 금융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학계, 금융권 등으로부터도 의견을 취합했다. 책준뿐만 아니라 자기자본 비율이 지나치게 낮은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 구조와 주택공급 확대, PF 시장 질서 확립이 필요했다.

지난달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PF 제도개선방안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마련됐다. 개발사업 시행법인에 대한 현물출자 허용과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 확대, 책준 미이행시 채무인수 관행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책준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책임준공 개선 태스크포스(TF)도 출범될 예정이다.

TF는 내년 1분기 중으로 책준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시행과 시공 리스크 분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책준 미이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체이자 등 실질적인 손해에 대해서만 시공사가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요구의 핵심"이라며 "해당 내용이 반영된 표준 약정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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