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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아쉬움 [thebell note]

박상희 기자공개 2017-09-04 08:04:50

이 기사는 2017년 09월 01일 07: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아자동차가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31일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과거 소급분에 대해서는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기아차는 망연자실한 모습이고, 자동차 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노조가 집단소송으로 제기한 1조 원이 넘는 청구금액 가운데 법원이 인용한 금액은 4000억 원 수준에 그쳤지만 기아차가 앞으로 감당하게 될 재정적 부담은 조 단위다. 법원이 집단소송 이외에 직원 13명이 제기한 대표소송도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 통상임금 소급분을 전 직원에게 확대 적용할 경우 지급해야 하는 금액과 소송 이후부터 현재까지 소급분을 감안하면 총액은 1조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했고, 경영상황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중국 사드보복·미국 통상압력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돼있기 때문에 소급분 지급이 신의칙을 위반한다는 기아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기아차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양호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재정 및 경영상태와 매출실적 등이 나쁘지 않다는 점 등이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사용됐다.

법원 측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시점을 소송 제기 시점에서만 봤다. 판결 시점에서 보면 기아차는 과거와 달리 심각한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다. 파업 리스크로 국내 생산성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고, 중국의 사드 보복은 현재 진행형이며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으로 미국의 통상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조 단위 충당금 적립으로 3분기 적자전환이 불가피하며 연간 경영 실적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송 제기 시점 당시 아무리 우량하고 건실한 기업이었다 하더라도 기술과 트렌드 경쟁에서 뒤쳐지면 2류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판결 시점인 현재 전기차,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해 대규모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도 적정한 규모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 법원의 신의칙 적용이 제각각이라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의칙 부정으로 지게 될 재정적 부담을 차치하더라도 기아차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으로 기업 경쟁력이 크게 저하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한국 자동차의 글로벌 경쟁력은 '가성비'로 통했다. 품질은 우수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대비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통상임금 인정으로 인건비가 크게 상승하면서 원가 경쟁력 확보가 어렵게 됐다. 통상임금 인정 이전에도 국내 완성차 업체 인건비는 경쟁국에 비해 과다한 수준이란 평가가 많았다.

지금의 통상임금 문제는 기아차 등 사측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지침을 준수하면서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상여금 지급 규정을 적용한게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기아차 판결을 계기로 자동차 부품업체 전반으로 통상임금 소송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우려가 크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반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상급심에서는 통상임금에 대한 법리적 검토뿐 아니라 소송 결과가 기업의 경영상황 및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영향 등이 두루 검토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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