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WM 10대 뉴스]관행과 뒤섞인 불법, 랩신탁 채권파킹 사태금리 급등에 평가손실 눈덩이…업계 자정노력 진행중
황원지 기자공개 2023-12-29 10:54:45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7일 07: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상반기 금융권을 강타한 이슈 중 하나는 랩·신탁에서의 채권파킹이다. 저금리 시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해 왔던 만기 미스매칭 전략이 단초가 됐다. 지난해 금리 급등으로 채권가격이 떨어지면서 큰 폭의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시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자전, 교체거래 등 불법이 자행됐다.현재 금융당국의 조사가 마무리된 가운데 증권사에 대한 징계 절차가 남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업계 전반에 걸쳐 이뤄져오던 관행이 결국 불법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부가 평가를 시가평가로 바꾸고, 만기 미스매칭 운용을 만기매칭 운용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문제 시발점 된 채권파킹 관행, 증권사 9곳 적발
저금리 시기 증권사에서는 랩, 신탁 상품에서 만기 미스매칭 운용전략을 종종 사용했다. 예를 들면 1년짜리 랩어카운트에 만기가 2년인 채권을 담아 이자율을 높이는 것이다. 통상 만기가 긴 상품이 이자율이 더 높으므로 고객 입장에서는 시중 예금 상품보다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1년이 지나 환매 시기가 다가오면 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을 파킹한다. 해당 채권을 파는 게 아니라 다시 사오는 조건으로 잠시 맡기는 것이다. 다만 이 때 사고파는 가격은 장부가로 고정된다. 이를 채권 파킹의 연계 자전거래라고 부른다. 일부 증권사는 상품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채권을 장부가로 매각해 환매자금을 마련하는 채권 돌려막기를 사용했다.
문제는 지난해와 같은 금리 급등기다. 금리가 급등하면 이전에 발행했던 채권의 가격은 폭락한다. 증권사들의 만기 미스매칭 랩, 신탁 계정에 편입해둔 채권들도 가격이 떨어지면서 평가손실이 불어났다.
동시에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유동성이 바닥난 기업들이 하나둘 환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가보다 크게 높은 장부가로 자전거래를 진행하다가 문제가 드러났다. 불어난 손실에 일부 상품에서는 환매가 중단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에서는 총 9개사(교보·미래에셋·유진·하나·한국투자·키움·NH투자·KB·SK)에 대해 집중검사를 진행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검사 결과 다수의 자본시장법 위반행위를 밝혀냈다. 예를 들면 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손실을 전가한 행위가 제3자 이익도모로 적발됐다.
가격이 떨어진 채권을 증권사가 직접 되사준 경우도 발견됐다. 누적된 손실로 만기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의 결정 하에 고객계좌의 CP를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제공했다. 이외에도 △계약조건 위배 △동일투자자 계좌 간 자전거래 △OEM펀드 운용 등 다양한 사례가 적발됐다.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사태는 정리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총 9개사의 임직원 30여명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통보할 계획이다.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 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인 가격을 산정하고,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를 밟아 환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위법행위가 아닌 단순 손실에 대해서는 고객들이 손해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별 징계 절차도 시작됐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내년 1월 중 제재심의위원회 절차를 시작한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각 증권사에 의견서를 보내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 선제적 자정노력…만기매칭·시가평가로 전환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업계 전반에 퍼진 관행에서 시작된 만큼 자정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가 폭발적으로 커진 원인으로 미스매칭 운용과 장부가평가가 지목된다. 단기 자금인 랩, 신탁에 과도하게 만기가 긴 채권을 편입한 미스매칭 전략이 1차 뇌관이다. 올해 논란이 생기기 전까지 업계에서는 1년짜리 랩에 7년 만기 여전채를 편입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전해진다. 상품과 랩, 신탁의 듀레이션 차이가 클수록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가격 손실도 더 커진다. 지난해처럼 금리 방향이 돌변하면 민첩한 대응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관행인 장부가 평가가 2차 뇌관으로 꼽힌다.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이전에 발행했던 채권의 가격은 하락한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이를 장부가로 평가, 거래하면서 손실을 숨겼다. 사온 가격대로 고객에게 고지하면 당장의 손실은 '0'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손실은 계속 불어났고, 결국 환매 요청 때 밝혀지면서 문제가 커졌다. 랩, 신탁 운용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각 증권사에서는 미스매칭 운용이나 장부가평가 방식을 개선한 상태다. 하나증권은 내부적으로 랩, 신탁 운용에 있어 듀레이션 규정을 신설했다. 신탁은 상품보다 만기가 6개월 이상 긴 채권을 담지 않고, 랩어카운트 상품은 편입 자산 평균 만기를 6개월 이내로 유지한다. 6개월 이내라면 가격 출렁임이 크지 않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동시에 모든 자산을 매각할 때 뿐만 아니라, 분기 단위로 시가평가해 고객에게 고지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1월부터 시가평가로 내부 기준을 바꿨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손실 위험이 커지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전언이다. 다만 듀레이션과 관련해서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고객이 만기 미스매칭, 매칭 전략을 선택하면 이에 맞는 전략의 상품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교보증권은 대부분 신규 상품을 만기매칭형으로 채우고 있다. 미스매칭형은 고객 요청이 아닌 이상 지양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채권 매매 시에도 장부가평가가 아니라 시가평가를 진행해 문제 발생 여지를 줄이고 있다. SK증권 또한 올해 1월부터 미스매칭 상품은 아예 판매를 중지했다. NH투자증권도 만기매칭형 상품만을 출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국이 주도해서 규제를 신설하기보다는 업계의 자정 노력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검사를 진행한 증권사 내부에서 내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업계 자체적으로 자정작업을 기다려보고, 금융위와 합의해 규정을 바꾸는 등 제한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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