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외평채]'600조' 외환보유고...'명분 쌓기'도 중요해졌다②정치 상황 고려 발행 지역·구조 다양화…새로운 '스토리' 만들기 집중
이정완 기자공개 2024-12-17 08:00:19
[편집자주]
기획재정부의 호주달러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은 이래저래 미스터리다. 호주에서 찍는 외평채도 처음이고 해가 바뀌기 직전 투자자를 찾는 경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발행 규모도 3억달러로 외환보유고 측면에서 실익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연내 외평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지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벨이 과거 외평채 발행 사례를 통해 본 이번 발행 배경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10일 07: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주된 목적은 외환시장 안정이다. 외화로 발행되는 외평채는 선제적인 외화 확보가 주된 목적일 수밖에 없다.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 정부는 안정적인 외환보유고 유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덕에 전세계에서 외환보유고가 9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여유가 생기다 보니 발행 주체인 기획재정부는 외평채 스토리 만들기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사상 첫 엔화 표시 외평채를 결정하거나 선진국형 이슈어(Issuer) 등극을 위해 SSA(Sovereign, Supranational and Agency) 스타일을 택하는 식이다. 외평채 이자비용도 결국 세금에서 나가는 만큼 발행 자체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판다본드·사무라이본드·캥거루본드…매번 바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4억달러를 나타냈다.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596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10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 순위는 전세계 9위를 기록했다.
외평채는 우리나라에 외화가 꼭 필요할 때 본연의 역할을 한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닥쳤을 때가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는 1998년 4월 40억달러 규모 외평채를 찍어 달러화를 마련했다. 1997년 말 외환보유고가 204억달러였으니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외평채가 한 번에 40억달러를 조달하는 건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비슷하다. 이 때도 이듬해인 2009년 30억달러 규모 외평채를 발행했다. 당시 정부는 우리나라보다 신용도가 2~3단계 높은 아부다비 정부 채권과 같은 금리로 발행했다며 성과를 알렸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정부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강박적일 정도로 외화 확보에 집중해왔다. 전세계 외환보유고 '톱(Top) 10'에 이를 수 있던 이유다. 기획재정부가 외평채 발행 이정표 만들기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2022년 발행을 한 해 건너 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에서 역대 최초 사무라이본드 외평채 발행을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12년 만에 한일 정상회담을 재개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지난해 9월 700억엔 규모 엔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했다.
공교롭게 약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때는 우리나라와 중국 관계가 친밀해지면서 사상 처음으로 위안화 표시 외평채를 찍었다. 2015년 3년 만기로 30억위안를 조달했는데 이후 한 번도 판다본드 외평채를 찍은 적이 없다. 외국정부가 중국에서 국채를 찍은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올해는 이달 초 사상 처음으로 호주달러 표시 외평채 프라이싱에 돌입했다. 올해 남은 외화 표시 외평채 한도인 3억달러를 딱 채워 4억5000만호주달러를 마련했다. 이번에는 발행 한도에 대한 고민 탓에 아직 금융시장이 문을 닫지 않은 호주를 찾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평채 아니어도…'탄탄한' 대외신인도 인정
IB업계에서는 올해 외평채가 SSA 발행을 도입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판단한다. 지난 2월 한국산업은행이 한국물 발행사 중 처음으로 SSA 스타일로 발행하자 우리 정부도 이를 따랐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지난 6월 10억달러 규모 프라이싱을 마치고 이 같은 성과를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투자자 구성이 우량한 SSA 투자자로 다변화되면서 외평채 위상이 한층 제고됐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국제사회 굳건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탄탄한 대외신인도를 인정 받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는 사실상 분기마다 공모 시장으로부터 안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산업은행을 통해서다. 대한민국 정부와 동일한 신용도를 인정 받는 두 기관은 한국물 대표 발행사로서 매 발행마다 수십억달러를 조달하고 있다. 비상계엄 같은 변수만 만들지 않는다면 'AA급' 우량 발행사로서 지위가 흔들릴 일이 없다.
관성적인 외평채 발행이 지적을 받는 건 비용 때문이다. 외평채 역시 채권이란 특성상 공짜로 발행되지 않는다. 이달 초 IB업계에서도 뜻밖으로 여겨진 캥거루본드 외평채 발행액은 우리 돈으로 4130억원이다. 발행금리는 연 4.51%으로 정해졌다. 1년 이자비용만 약 180억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외신인도 인정을 위한 발행은 큰 의미가 없다"며 "기획재정부에서 늘 하던 대로 예산을 확보해 외평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결국 이자비용은 국민 세금에서 나간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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